STEADY BETTERMENT

필사) 결국 내가 되는 방법 '숲속의 자본주의자' 본문

BOOK

필사) 결국 내가 되는 방법 '숲속의 자본주의자'

_포코 2023. 8. 22. 10:12

79

'원하는 무언가를 얻는데 실패하면 불행하다. 애초에 원하는 게 없으면 실패하고 말고 할 게 없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만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다는 말. 그러니 개인이 지속적으로 평화로우려면 욕망을 줄이라는 이야기다. 

 

86

욕망을 줄이는 일이 나에게 불가능한 고행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욕망이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를 두려워하고 미워했던 사람들은 욕망을 마음껏 따르면 타락하고 남들에게 피해를 주게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의 욕망을 극대화시켜 거의 무한대의 소비를 부추기는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나만의 고유한 욕망과 욕구를 정확하고 정밀하게 아는 것이 오히려 소비의 피곤을 줄여준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아니라면 아무리 싸도 갖지 않는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칭송하는 것이라도 내가 원하지 않으면 추구하지 않는다. 넘쳐나는 지식 사이에서 내가 정말 궁금해서, 알면 내게 기쁨을 주는 것만 파고든다. 그렇게 나의 욕망을 소중하게 탐구하다 보면 나와 다른 욕망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점점 너그러워지는 나를 발견한다. 

 

91

이 세상에 대한 꿈과 이상도 마찬가지다.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하겠다. 세상을 지금보다 더 나은 곳으로 만들겠다. 이런 생각역시 바구니를 짠 마을 사람들 같은 생각이다. 이 세상을 지금보다 나아져야 하는 곳으로 판단하는 것도, 변화를 위해 무언가 해야 한다는 것도, 온전히 나만의 판단이다. 그럼에도 변화를 위해 살기로 했다면 당신의 선택일 뿐이다. 세상은 요구하지 않는다. 당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 만큼 세상에 무얼 해줄 필요도, 감사하거나 보답해야할 이유도 없다. 그런 부담이 없을 때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분노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비로소 공평해졌으니 말이다. 

 

101

언제 이혼해도 나는 실패한 것이 아니라 꽤 괜찮은 결정을 한 것라는 것을 깨닫고 나니까, 더 이상 결혼이나 남편을 바꾸는 데 관심이 없어졌다. 

 

102

나는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려는 행동을 그만뒀다. 대신 나의 주인이 됐다. 지금을 나의 행동, 나의 책임, 나의 것으로 만들었다. 불행이나 잘못의 원인과 책임을 나에게 돌리지 않고, 그 상황을 내 일부로 인정했다. 내 힘으로 잘못과 불행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내것이라는 결단을 내렸다. 

 

103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힘보다 더 상위의 강력한 힘은 변화가 필요없는 맥락과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그 정도의 힘이 생기면, 변화가 저절로 찾아온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변화가 아니라 변화가 필요없는 맥락에 모든 것이 적절하게 들어맞는다. 

 

126

하지만 막상 내가 일할 때에는 그 긴 과정이 나에게 의미가 된다. 나의 성장, 나의 의미, 나의 깨달음으로 연결되는 일은 그만큼 시간과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 세상의 속도와 다른 방식의 성숙과 배움이기에, 이런 일들의 가치는 돈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의 방식에 맞추지 않는 것이다. 스콘이 훨씬 잘 팔릴 거라는 걸 알면서도 발효빵을 굽는 것처럼. 

 

147

돈으로부터의 자유는 돈을 끝없이 가져서 나의 인간다운 특성으로부터 달아나 완벽한 권력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돈을 아예 버려서 내가 인간으로서 소비하며 느끼는 즐거움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돈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돈을 내가 즐거움을 느끼는 다른 가치로 무한히 전환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집 또한 부동산 가치 자체가 아니라 안전한 공간에서의 휴식,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대화,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과 같은 가치로 누리는 것처럼 말이다. 

 

155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열심히 돈을 벌어서 가족이나 친구에게 넉넉한 물질적 풍요를 제공한다고 해서 관계에서 내 역할을 다한게 아니라는 건 명백한데, 우리는 그 사실을 쉽게 잊는다. 이렇게 내 돈으로 문제를 다 해결했다는 착각과 그 만족감은 나 자신을 소외시킨다. 

 

156

혼자일 때 인간은 타인의 문제는 커녕 자신의 문제도 시원하게 해결할 만한 능력이 없다. 불완전하고 그래서 남에게 자연히 기대서 살아간다. 그럼에도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실패하기 위해서. 그리하여 이렇게까지 애써도 나 혼자 힘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기대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 우리는 그렇게 불완전한 남을 받아들이고 나 자신에게 너그러워지면서 남에게 기대는 용기를 얻게 된다. 

 

162

일단, 사실을 받아들인다.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를 전부 수긍한다. "엄마가 게을러서 아이가 불쌍하다." "공부를 안 시키면 나중에 후회한다." 그 말속에는 사실도 있다. '그렇지. 내가 게으르지. 맞아. 공부를 안 시키고 있지.' 그렇게 사실로서 받아들인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이런 의문이 든다. '불쌍한 게 뭐가 문제지? 나중에 후회하는 게 왜 문제지? 원래 인생에서 뭘 하든 후회하기도 하고 상처받기도 하고 불쌍해지기도 하는 거 아닌가?' 사실과 의견을 분리하는 건 어려모로 공포를 줄여준다. 

 

166

사람들이 타인을 보며 판단할 대, 그들은 늘 자기 자신을 비춰보고 있기 때문이다. 타인이 가진 무수히 많은 것들 중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는 것이다. 우리에게 더 중요한 질문은 늘 '내가 어떻게 다른 사람을 보고 있는가'라는 문제다. 타인에 대한 내 반응이 내가 누구인지 가장 정확하게 알려준다. 

 

175

우리가 생존에 필요한 것 이상의 표현을 하고, 옷을 입고, 일을 하는 모든 행위는 결국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서다. 그 보상의 형태가 돈이든, 명성이든 우리는 남들에게 나 자신을 보여주기 위해 산다. 

 

183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이 글을 쓰는 가장 중요한 원칙을 이렇게 설명했다. "쓰면서 내가 즐거운 글을 쓴다. 내가 즐거우면 그것을 똑같이 즐겁게 읽어주는 독자가 틀림없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는 오히려 독자들의 기대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관심을 가지면 다른 사람들도 그 주제에 흥미를 느낄 거라는 확신이 있다며, 창의적인 사람들이 슬럼프에 빠지는 큰 이유 중 하나가 타인의 기대에 너무 집중하는 데 있다고 진단했다. 

 

194

그는 자유로운 철학과 내면의 자유를 위한 최소한의 물질적 필요를 철저하게 계산하고 유지하는 데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241

그것은 온전히 나의 문제였다. 내 삶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통제할 수는 없지만, 내 경험을 어떻게 지각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내게 달려 있었다. 

 

261

나 자신도 납득할 수 없지만 그냥 끌리는 것이 있다. 나의 계산으로는 불가능하고, 심지어 나의 취향에도 맞지 않고, 앞으로 나에게 쓸모 있을 것 같지 않은 그런 일이나 주제들에 참을 수 없는 끌림을 느낄 때, 나는 항복한다. 일단 행동으로 옮긴다. 두 달 동안 삼시세끼 팥빙수만 먹기 같은 단순히 미련한 짓일 때도 있고, 바이올린 배우기와 바이올린 제작의 역사 공부하기 같이 정상적일 때도 있고, 줄리아 로버치 영화 전편을 백 번씩 보기 같이 나중에 도움이 되지만 당시로서는 확실히 게으름으로만 보이는 짓을 하기도 한다. 중요한 건 두가지다. 이런 항복의 습관을 들이면, 나 자신의 깊은 욕구에 충실하게 반응하는 습관이 든다. 이렇게 살다 보면 삶이 어떻게 풀리든 간에 남이나 사회를 탓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인생의 매 순간이 풍요롭게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