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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 결합과 땜질로 탄생한 모든 것들의 자연사 '불완전한 존재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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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 결합과 땜질로 탄생한 모든 것들의 자연사 '불완전한 존재들'

_포코 2024. 5. 2.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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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완벽함(즉,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너무 많지도 너무 적지도 않은 상태)이라는 개념은 우리의 생각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끈다. 우리가 현재 여기, 그러니까 별이 빼곡한 하늘을 동경하고 과학적으로 우주의 역사를 재건하는 지구에 있기에 이는 역산을 통해 내리는 판단이다. 같은 조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셀 수 없이 다양한 대체 가능한 결과물과 각본을 과소평가하기에, 결과에 기반한 판단은 진화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장애물로 작동한다. 꼭 필요하고 완벽해 보이는 변칙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라면 설사 완벽하지 않더라도 완벽해 보이게끔 만든다. 심이어 현실을 뒤집어 보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우연의 역사를 사후에 돌아보면, 우리는 운명과 설계 그리고 몇 가지 사건을 선택적으로 골라내고 나머지를 무시하며 운명론적인 단어를 통해 추론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드러난 특정 결과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처럼 보이게 한다. 마치 처음부터 카드에 모든 수가 적혀 있고, 꼭 필요한 일들만 거미줄로 연결된 듯 보이는 필연성처럼, 하지만 필연적인 듯 보이는 결과는 사후에 갖는 자기 위한적인 착각이자, 의도와 결과를 소급 적용해 깨달음을 얻는 과정에서 생기는 오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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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을 염두에 두면서 목표를 보여주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의도를 지닌 누군가가 등장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주적 그리고 생물학적 진화의 움직임이 불완전함에서 완전함으로, 단순함에서 복잡함으로, 무기체에서 사고가 가능한 생명체로 흘러갔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러한 방식으로 합리화하면, 중요한 순간들이 미첬던 파급 효과와 그 후에 발생한 사건들의 미묘한 불완전성이 미래의 사건들에 영향을 미첬는지, 그에 관한 감각을 잃을 위험이 있다. 만약 우리가 과거의 어떤 중요한 순간에 가능할 수 있던 일들을 생각하며 그 순간들이 어떻게 미래를 바꿨는지 진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그리고 그 순간의 다양한 가능성과 해당 시점에서의 과거와 미래를 모두 고려한다면), 우리 앞에는 수많은 다른 미래의 모습들이 드러날 것이다. 이러한 미래들은 과거의 중요한 순간들과 그 순간들의 작은 불완전함으로 인해 생겨난 것들로, 오늘날과는 전혀 다른 현재의 모습들이 될 것이다.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며, 필연적이며 사전에 정해진 '자연스러운 것'으로 심지어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현실이 된 단 하나의 현재만을 주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실현되지 않은 모든 가능한 이야기들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중략) 사후 가정은 독이다. 이를 지워버린다면 미래는 훨씬 더 열려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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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은 '종의 기원'에 이렇게 기술했다. "간접적으로 얻은 구조는 처음에는 해당 종에게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새로운 생활조건과 새롭게 획득한 습관으로 변형된 자손에게 이들을 가져다줬을 것이다." 예를 들어, 다윈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어린 포유류의 두개골에 있는 봉합선이 출산 시 어미의 골반을 쉽게 통과하기 위한 진화적 '적응'으로 발달한 것이 아니라고 깨달았다. 사실 알에서 태어나기에 이런 구조가 필요없는 어린 새와 파충류의 두개골에도 봉합선이 있다. 이는 이 특성이 어쩌면 파충류, 조류, 그리고 포유류의 초기 공통조상에서 성장의 제약으로 인해 진화했으며, 나중이 되서야 포유류의 출산과 맞물려 예상치 못한 유용함을 얻었으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다윈은 불필요하고 완벽하지 않은 특성이 과학자들에게 또 다른 이점을 선사한다고 언급했다. 

"불완전함은 수많은 생명체 사이의 연결고리이자 진화의 역사를 새롭게 구축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고고학적 흔적으로서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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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선택이 모든 측면에서 생물체를 완성하고 최적화하는 요인은 아니다. 그럴 수 없다. 왜냐면, 자연선택은 우연한 상황에 작동하므로 변화하는 맥락에 항상 상대적일 수밖에 없으며, 더욱이 생명체의 진화가 그들만의 역사적, 물리적, 구조적, 발달적 제약 조건의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자연선택은 각 유기체를 완벽한, 아니 경쟁하는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다른 생명체들과 비교해 비슷하거나 약간 더 완벽한 상태로 만들 뿐이다. 그리고 이것이 자연에서 취득한 완벽함의 기준이라 생각한다. <...> 자연선택은 완벽함을 낳지 못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아는 한 이 높은 기준을 자연상태에서 만날 수는 없다."

 

110

다윈은 적응은 변화에 대응하는 움직이는 상태이지 완성된 최적화된 상태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초기 눈은 오늘날 우리가 보는 것과 달리 광원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잠재적인 위협이 될 수 잇는 실체의 윤곽선을 대충이나마 인지하는 정도였다. 그 후 시간이 지나며 점차 정교한 윤곽선을 구별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물체의 입체적인 형태, 강렬한 색체, 그리고 원근감을 인지하게 됐다. 

 

120

자연은 계획을 세우지 않고 방법을 찾아낸다. 

 

151

과잉된 DNA를 만들어내는 진화의 작동원리를 세 가지 범주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일부 염기 서열의 유전적 이기주의로, 자신의 복사본을 효과적으로 만드는 능력을 가진다. 둘째, 기능적으로 중요한 다른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수적인 결과로서, 본래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어느 정도까지는 쓸모없는 결과물을 용인한다. 셋째, 변이와 진화가능성(즉, 진화할 수 있는 능력)의 잠재적 선택지로서, 기능적인 이유로 선택돼 예상치 못한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물론, 자연선택으로 인한 진화가 당연히 미래의 혜택을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을 가정하면, 세번째 작동원리(진화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참신함)는 과잉된 DNA의 시작에 숨은 기능을 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160

우리의 감각은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부지불식간에 잘못된 편견을 갖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작은 창문 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다른 동물들이 저마다 각자의 방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처럼. 

 

174

진화는 이미 존재하는 것 위에 변이를 축적하며, 그 과정은 되돌릴 수 없다. 몇몇 신경생리학자에 따르면, 심지어 우리의 시냅스 간격조차 최고의 효율을 내지 못한다. 수천 년까지 생존했던 다른 사람속(예를 들어, 우리보다 뇌의 크기가 같거나 컸던 네안데르탈인)은 '우리와 거의 닮지' 않았다. 

 

183

신경가소성 : 뇌가 경험, 학습, 환경 변화에 대응해서 그 구조와 기능을 변경할 수 있는 능력을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