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ADY BETTERMENT

필사) 글쓰기에 진심인 사람이 글쓰기에 대한 책을 쓴다면?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본문

BOOK

필사) 글쓰기에 진심인 사람이 글쓰기에 대한 책을 쓴다면?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_포코 2023. 9. 16. 14:57

21

세상에는 글을 잘 쓰고 싶어 하거나 글쓰기를 꾸준히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대부분은 성공하지 못한다. 나는 그 이유가 주로 글쓰기에 '부수적인 욕망'을 붙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글쓰기 모임이 있다면, 꼭 글쓰기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들을 보고 싶어서 모임에 나가게 되고, 글을 쓰게 될 수도 있다. 아니면 상금을 목표로 하면 의외로 매일 글쓰기 연습이 가능해지기도 한다. 그런 식으로 무언가 할 때는 거기에 접목시키는 부수적인 욕망과 의미가 그 일 자체를 이끌고 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무엇ㄴ가를 하고 싶은데 좀처럼 잘 안 된다면, 거기에 다양한 목적을 덧붙여보면 좋다. 운동을 하고 싶은데 잘 안 되면, 운동하는 시간을 내가 좋아하는 팟캐스트 듣는 시간이라 생각하면 된다. 책을 읽고 싶은데 잘 안 되면 책 읽는 시간을 나의 강아지 쓰다듬어주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좋다. 요리를 하고 싶은데 잘 안 되면, 요리하는 시간만큼은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마음껏 들을 수 있는 시간이라 생각해도 괜찮다. 많은 중요한 일이 그런 식으로 이루어진다. 아니, 많은 중요한 일이 그런 식이 아니면 아예 이루어지지 않기도 한다. 

 

25

사람이든 사물이든 풍경이든 어떤 대상에 대해 글을 쓸 때는 그 대상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내 안의 어떤 당위, 기준, 편견 같은 관념이 앞서면, 결국 대상은 수단으로 전락해버린다. 가령 내 안에 '행복'이라는 기준을 미리 정해 놓고 쓴다면, 그는 내 행복의 기준에서 '옳음' 혹은 '그름'으로 규정될 뿐이다. 글쓰기는 대상으로부터 출발하여, 대상을 매만지면서, 대상의 여러 틈새와 세부들을 드러내어, 결과적으로 의미에 이르는 일이다. 

 

53

물론 글쓰기가 어느 단계를 넘어 좋아지려면 온갖 비판을 뚫고 성장해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장점을 아는 것, 그래서 그 장점의 존재 자체로 지지받는다는 느낌을 유지하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지지받지 못한 글, 지지받지 못하는 글쓴이는 존재할 수 없다. 

 

68

삶을 '나'라는 자아에 집착해서 보기보다는, 일종의 '인풋'과 '아웃풋'의 흐름으로 보면 견디기 수월해지는 측면이 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잘해야 하는 것들은 대게 아웃풋이고, 이런 아웃풋은 인풋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글을 잘 쓰고 싶으면 무턱대고 글을 열심히 쓰기 보다는 글이 잘 나올 수 있도록 무언가가 먼저 '들어와야' 한다. 잘 쓰고 싶은 만큼 많이 읽고,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만큼 많이 경험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하낟. 그렇게 들어오는 것이 넘쳐나며 나갈 수 밖에 없는데, 글쓰기란 그 나가는 통로를 정해주는 정도의 역할을 할 뿐이다.

 

115

어쩌면 우리 존재란 그런 것이다. 세상 전체에서 보자면야 모든 인간은 대체 가능하고, 한낱 부품일 뿐이고, 먼지같은 존재다. 그러나 각자의 삶은 각자에게 전적이어서, 우리는 그 속에서 충실함을 느낀다. 내가 하는 말, 내가 꺼내어놓은 것들, 내가 전하고자 하고 주고자 하는 것들, 그것들은 다 이세상에 없어도 그만인 것들이다. 그러나 내 삶에서는 그렇지 않다. 나는 그런 것들에 충실하면서 내 삶을 얻기 때문이다. 

 

125

하지만 글 자체가 이 시대에 뒤처져서 열등한 매체가 되었다고는 볼 수 없다. 오히려 이 사회 전체가 아주 작은 틈새 시간마저 모조리 빼앗아 소비시킴으로써, 그러한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는데 무척 적극적으로 모든 콘텐츠를 동원하고 있음을 생각하며, 텍스트는 그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지닌다. 분 단위의 영상, 그 사이사이 들어가는 광고, 틈새 시간에 몰입하게 하는 게임, 그리고 그 게임이 요구하는 온갖 결제에 비해, 글은, 아니 적어도 책은 그런 식으로 시간을 빼앗아 돈으로 바꾸는 데 환장한 매체는 아니다. 오히려 도서관에서 빌린 책 한 권은 그러한 모든 자극적이고 소비적인 콘텐츠로부터 가장 강력한 보호막이 되어줄 수 있다. 

 

170

글 안에서만큼은, 나 자신으로부터 오는 요구와 타인들로부터 오는 요구가 어느 정도 조화를 이루는 일이 가능하다. 나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면서 나를 위한 일이고, 동시에 누군가에게도 무언가를 줄 수 있는 일. 이것이 아무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이 아닐까 싶다. \

 

201

사람은 누구나 자유롭길 원한다. 그런데 자유는 여기를 벗어난 다른 곳에 있는 게 아닐 것이다. 자유는 여기와 저기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잇는 마음의 힘에 있다. 자유란 벗어남이나 무조건적인 해방이라기보다는, 이동할 수 있는 능력, 오갈 수 잇는 힘인 것이다. 그러니 내가 삶에서 부지런히 오갈 수 있는 장소들, 옮겨 탈 수 있는 자아들을 적절히 만들어 두는 것이야 말로 참으로 중요한 일일 것이다. 

 

230

어떻게 글을 써야 좋을지 모를 때는, 통념과 싸우면 된다. 그러면 나의 싸움이 결코 혼자만의 싸움이 아님을 알게 되고, 계속 그 싸움을 이어나가고 싶어지고, 그리하여 꾸준히 글을 쓰게 된다. 

 

242

가능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들어내기 위해 순간순간 애를 쓴다.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나를 꾸미는 말보다는 내 내면에 일치하는 말을 하려고 한다. 적어도 그 순간에 분열되지 않고자 한다. 잘 보이려 하지 않고, 멋있어 보이거나 좋은 살마처럼 보이려고 애쓰지 않는다. 

매일 글을 쓰는 이유도 더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함이지, 스스로 분열되거나 누군가를 속이거나 그를 통해 무엇을 얻기 위함은 아니다. 내가 언제까지나 나 이상의 것을 말하지 않는 사람으로 살 수 있길 바란다. 그런 삶을 살고 싶어서 매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