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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 게슈탈트 심리학으로 나를 이해하는 방법 '이해받는 것은 모욕이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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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 게슈탈트 심리학으로 나를 이해하는 방법 '이해받는 것은 모욕이다'

_포코 2024. 4. 3. 20:16

14 불완전한 것을 연결해 완전한 형태로 본다.

우리는 카메라와 달리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형태를 완결시켜 완전한 형태로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즉, 부분을 하나씩 따로 보는 것이 아니라, 부분들의 관계를 연결해 하나의 의미있는 전체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런 능력은 가르쳐주지 않아도 본래부터 가지고 태어난다. 

 

42

"이해받는 것은 하나의 모욕이다."라는 말은 "아무도 당신의 심정을 이해했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졌고, 그것은 "이해받지 못하는 것은 근원적으로 나의 잘못이 아니라, 상대방의 한계이며, 나아가 인간의 한계다."라는 말로 들렸다는 것이다. 즉, "나는 있는 그대로 온전한 존재인데, 사람들의 편견, 욕심, 미해결 과제, 언어소통의 한계등으로 인해 안타깝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것이다"라는 말로 해석이 돼 크게 안심되고 위로가 됐다는 것이었다. 

니체가 "이해받는 것은 하나의 모욕이다"라고 말한 진의는 "아예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하지 말라"는 뜻이라기보다는 "함부로 이해했다고 속단하지 말고, 더 진심으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이해는 판단이 아나라 상호소통의 과정이다. 

 

93 부정적 사고 패턴을 현재 상황에 맞게 변화시키는 방법

1. 습관화된 생각 알아차리기 

2. 부정적 생각의 배경 이해하기

부정적 생각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함으로써 자책하거나 수치심에 매몰되는 대신, 자기 이해와 자기 수용을 할 수 있으며, 또한 부정적인 생각의 맥락적 효용성을 통찰할 수 있다. 부정적 생각들이 과거 상황에서는 효용이 있었지만, 현재 맥락(상황)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3. 현재 상황 정확히 보기

내가 늘 해온 생각이 한때는 도움이 됐던 것들이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맞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그 생각이 지금 상황에서 타당한지 검토해 보는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는 판단이 서면 현재 상황에 맞는 생각이 무엇일지 찾아보는 것이다. 

4. 새로운 생각 실험해보기 

현재 상황에 맞는 새로운 생각이 하나의 가능성으로 떠오를 때, 그것을 실제로 한번 행동으로 옮겨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이렇게 해도 사람들이 이상하게 받아들이거나 외면하지 않으며, 오히려 관계가 더 좋아지고, 사람들이 나를 더 환영하는구나"라는 경험을 하면서 차츰 부정적인 생각을 놓아버리게 된다. 

 

106

타인에게 인정받으면 모든 보상과 더불어 행복이 찾아올까? 나는 단언컨데 그것은 환상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될 수 없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자기 부정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나 자신으로서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나를 타인의 기준에 맞춤으로써 비로소 받아들여지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이는 지금의 나를 변형시켜야만 가능해지는데, 내가 나를 깍거나 갈아서 다른 형태로 만드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그리고 그것은 얼마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요하는 일일까?

나의 존재를 바꾼다는 것은  원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나를 바꾼다는 것은 이분법적인 발상이다. 즉, 이는 나를 개조하는 행위자로서의 나와 개조 대상인 나를 둘로 나눠서 행해야 하는데, 그것이 어떠헥 가능할지 의문이거니와, 만일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렇게 해서 바뀐 내가 과연 나라고 할 수 있느냐는 질문과 더불어 그 행위를 수행한 주체로서의 나는 그만 사라지는지, 아니면 여전히 살아남는지, 그렇다면 그는 대체 누구인가라는 등의 의문이 생긴다. 

 

108

우리는 노력해서 언젠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으면, 미래의 그 시점에 행복해질 거라 믿는다. 그러나 그런 날은 오지 않는다. 미래는 실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말로 존재하는 것은 지금뿐이다.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영원히 행복해질 수 없다. 행복은 지금 순간과 접촉하며 삶과 연결될 때 느껴지는 생생하게 살아 있는 느낌이다. 평생 행복을 훗날로 미루고만 살던 사람이 어느 날 성공이 찾아오면 행복해질까? 

행복을 미래의 꿈으로만 생각하며 살던 사람은 아마 그날이 오더라도 행복을 다시 미래로 연기하려 들 가능성이 높다. 지금 사는 법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110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사랑이지, 인정이나 평가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왜 우리는 사랑 대신 인정받으려고 그렇게 애를 쓰며 사는 것일까? 있는 그대로 부모님이나 사회로부터 사랑받았다면, 우리는 인정받으려고 그렇게 안달복달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 사랑받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서 인정이라도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149

자책은 왜 효과가 없을까? 그것은 반성과 달리 알아차림 없이 자동으로 일어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반성은 자신의 행동을 차분히 돌아보며 문제점을 파악하고 합리적 대안을 찾아내는 건강한 행동이다. 반면 이 내담자의 자책은 반성 수준을 넘어서 자기를 질타하고 학대하는 자기파괴적 행동에 가깝다. 

 

153

어린시절 받았떤 상처들이 내사돼 스스로 가해자가 되고, 자신에게 2차, 3차 가해를 하는 일들이 참 많이 일어난다. 자기 오해를 통해 자기 비난과 자기학대가 생겨나고, 이는 상처를 대물림하는 일로 이어진다. 세상에 이보다 더 억울한 일이 어디 있을까?

소크라테스가 했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은 여러 차원에서 의미심장한 말이지만, 나는 이 말을 "자신에 대한 오해에서 벗어나라"라는 말로 풀이하고 싶다. 우리는 대부분 자기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그것이 큰 착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상담자로 지난 35년간 만난 사람들 가운데 자신을 잘 알고 있따고 느껴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반대로 오히려 거의 모두가 자기를 오해하고 있었다. 

 

162

현실이란 무엇인가? 지금 순간의 생생한 감각, 생각, 감정, 욕구, 신체 상태, 이미지, 행동 등이다. 이런 것을 있는 그대로, 우리의 의식에 나타나는 대로, 매 순간 알아차리고 상대방에게 표현하고 서로 반응하는 것이다. 그것은 생각을 통해 해석이나 이름 붙이기를 하는 것이 아닌, 생각이 끼어들기 전의 생생한 현상들을 알아차리고 표현하고 교류하는 것이다. 

현실은 지금 이 순간에만 존재한다. 생각은 과거와 미래를 왔다갔다하며 현실을 추상화하는 작업을 한다. 추상화란 현실을 요약해 개념으로 만드는 것이다. 즉, 생각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생각이 현실을 만나는 순간 현실은 과거나 미래가 돼 죽어버린다. 

생각 자체는 감각이나 감정, 욕구, 신체 상태 등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현실이지만 생각을 '하는' 순간 현실인 생각은 괴물로 변해서 다른 현실들도 함께 다 죽여버린다. 그래서 생각을 '알아차리는 것'과 생각을 '하는 것'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자는 현실로서의 생각을 마음의 눈으로 보는(알아차리는) 것이고, 후자는 생각과 나를 동일시하는 것이다. 

 

171

삶의 목적은 그것을 사는 것이다. 진정한 삶을 사는 것이다. 안전하기 위해 생각 속으로 도망치지 않고, 나타나는 대로의 현실을 피하지 않고 용감하게 마주하며 실존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즐거움이나 슬픔, 분노, 외로움, 때로는 후회나 회한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삶이라는 신비가 펼쳐지는 과정에 잠시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삶의 목적은 편하게 살거나, 아니면 반대로 되도록 많이 고생해 보는 데 있지 않다. 그것들은 모두 우연적 현상일 뿐 진정한 본질이 아니다. 삶의 의미는 있는 그대로의 실존, 거짓이 아닌 참된 삶을 사는 것이다. 즐거움이든 기쁨이든 슬픔이든 분노든 외로움이든 죄책감이든 어떤 것도 '좋은 것' '나쁜 것'으로 판단하지 않고, 나타나는 대로 직면하며 사는 것이다. 

어떤 것도 좋다고 붙들거나 싫다고 피하지 않고, 허용하면서 생생하게 만나며 진짜 삶을 사는 것이다. 생각(지도)은 그것들을 그대로 수용하기를 거부하고, 좋은 것은 붙들고 싫은 것은 피하려는 계산적 이성(표상적 사고)의 산물이다. 생각을 통해 안전한 삶을 살려는 계산은 음식을 먹는 것을 상상하면서 음식을 먹는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지도 위를 걷는 것을 여행이라 착각하는 것이다. 삶은 표상적 사고가 멈출 때 생생하게 드러나는 실존이다.

 

198

생각은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세계(과거, 현재, 미래)를 만들어 현실을 통제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에서 생겨났다. 이러한 염원은 애초에 불가능한 환상이지만 언어를 통해 삶을 이해하고 평가해 온 수십, 수백만 년에 걸쳐 진행된 인류의 진화와 맞물려 있다. 즉, 인간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지각하는 대신 언어라는 도구(프로그램)을 통해 요약하고, 평가하고, 예측하는 방식으로 진화해왔다. 그런데 언어는 매우 제한되고 불완전한 도구다. 언어를 통해 삶이라는 무한한 신비를 재단하려들면 삶은 불가피하게 왜곡되고 축소될 수밖에 없다.

 

208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대부분 상전 목소리는 어린 시절 외부로부터 주입됐던 것이거나 본인이 처했던 어려운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스스로 만들었던 것들인데, 그 내용을 탐색하다 보면 상전의 목소리가 한때는 자신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었고 적응적인 가치가 있었으나 상황과 맥락이 달라진 지금은 타당성이 낮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게 되면 상전의 목소리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판단을 하고 내려놓을 수 있게 된다. 

 

 

211

생각이 내가 아니란 것을 이해하면 우리는 엄청난 자유를 얻게 된다. 생각과 동일시함으로써 우리의 모든 심리적인 고통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상전의 목소리와 동일시하지 않고 나타나면 나타나는 대로, 사라지면 사라지는 대로 그냥 바라볼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먼저 상전의 목소리(생각)을 알아차리고(발견하고), 그것과 거리 두기를 해야 한다. 즉, 동일시하지 않고 마치 벌이나 나비가 날아가는 것을 보듯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런데 자신도 모르게 상전의 목소리를 동일시해(휘말려, 휩쓸려) 따라갔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일은 항상 일어나므로 그에 대한 정확한 대처가 필요하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새 상전의 목소리에 동일시해 자기 비난과 좌절감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일이 다반사다. 

그럼 어떡하면 좋을까? 그것은 절망적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좋은 기회다. 길을 잘못 들어섰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상전을 동일시해 고통스러운 감정을 느끼는 순간 '상전의 목소리에 내가 휩쓸렸구나!'라고 꺠닫고 얼른 동일시에 벗어나면 된다. 

어떻게 벗어나는가? 상전과 동일시하는 데 투입된 주의를 즉시 철수해 창밖 하늘을 보거나 길거리 풍경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 도움이 된다. 차 지나가는 소리를 알아차리는 것도 좋다. 상전의 목소리에 강하게 붙들렸을 때는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그때는 심호흡을 두세번 크게 하느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서 온몸으로 생기가 퍼져나가는 느낌에 주의를 집중해 몸의 감각을 세밀하게 알아차리는 것이 좋다.

 

241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강하게 치미는 감정은 대부분 나의 억압된 감정과 관련이 있다고 봐야 한다. 그것을 우리는 감정으로 느낄 수도 있고, 신체적 흥분으로 느낄 수도 있다. 그것을 우리는 감정으로 느낄 수도 있고, 신체적 흥분으로 느낄 수도 있다. 그런 강렬한 감정은 상대방한테 바로 표현하기보다 자신의 내면을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256

'너에게 말하기'는 "지난번에 그 말을 하셨을 떄 좀 놀랐어요" "제가 드린 말씀에 혹시 마음이 상하지 않으셨을지 걱정이 됐어요" "그 말씀을 해주셨을 때 무척 고마웠어요"와 같이 서로의 관계에 대해 직접 말을 하는 것이다. 이런 대화는 목적이 따로 있지 않고, 대화 자체가 목적이다. 즉, 상대방 존재와의 만남이 목적이다. 

 

276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불안이고, 이미 쓸모없는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은 우울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흔히 느끼는 감정이 불안 아니면 우울인데, 그런 것들은 모두 '쓸모 있음'과 '쓸모 없음'에 의해 생겨나는 감정이다. 즉, 계산적 사고에 갇힘으로써 인간이 도구화돼 존재 상실을 경험하면서 겪는 감정인 것이다. 

 

279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다른 사람을 대상화하려면 자기 자신을 먼저 대상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타인을 판단 평가하는 사고와 나를 판단 평가하는 사고의 구조는 서로 다를 수 없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려면 원리적으로 자기에게 먼저 손상을 입혀야 한다. 

 

290

나는 파도가 아니라 바다다. 우리는 일시적인 현상인 파도를 나와 동일시해 다른 파도와 비교해 내가 더 멋있다 아니면 못하다며 기뻤다, 슬펐다 한다. 

만일 나의 정체성이 파도가 아니라 바다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매번 조건에 따라 형태가 변하는 파도로 인해 일희일비하지 않게 될 것이다. 나는 늘 변하는 파도가 아니라 그것을 받쳐주고 품어주는 바다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고통이 사라지고 진정한 기쁨과 행복, 자유와 평화, 사랑과 지혜, 감사와 생생함이 돌아온다.

나를 발견한다는 것은 바로 바다를 발견한다는 것이다. 한순간도 파도를 떠난 적이 없고 항상 그 아래에 있지만, 우리는 늘 파도(전경)에 붙들려 바다(배경)을 놓친다. 우리가 하는 생각, 감정, 느낌이 파도라면 진정한 나는 그 아래에 있는 바다다. 왜 우리는 늘 바다를 놓치는 것일까? 파도에 붙들리기 때문이다. 

 

293

생각은 부족한 나를 이상적인 나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판단하고 평가하느라 항상 분주하다. 그런데 이상적인 나는 생각 속에만 존재하는 허구일 뿐 존재(생명)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내가 성공한 사람이라든가 실패한 사람이라든가 혹은 쓸모 있는 사람이라든가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말은 모두 생각이 지어낸 허구(허상)로서 참 생명인 나의 존재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들이다. 나의 존재는 생각이 떠들어대는 그런 대상이 아니다. 그런 것은 진정한 나가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진정한 나는 생각이 알 수 없는, 생각을 넘어서는 존재다. 그것은 결코 생각을 통해서는 파악할 수 없다. 오히려 생각이 사라지고 마음이 고요해졌을 때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느껴진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귀에 들리지도 않고, 냄새나 맛도 없으며, 만져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없다고 할 수 없으며, 지금 여기에 분명하게 있는 존재다. 

 

310 모른다는 사실을 편하게 수용하기

모른다는 사실을 수용한다는 것은 "생각을 중시하지 않는다"라는 의미다. 이는 주의를 미래(상상)에서 현재(현실, 알아차림)로 옮김을 의미한다.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모른다. 괜찮아!"라고 자신에게 말하고, 얼른 주의를 지금 여기로 돌리라. 이는 고요함이며, 현전이며, 알아차림인 본래 나에게 주의를 돌리는 것이다. 모르는 것에 익숙해질 때 나를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