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ADY BETTERMENT
직장 생활기 1 본문
첫달
1. 아직도 어쩌다가 직장에 들어왔는지 영문을 모르겠는 상태. 안정적인 수입이 내게 줄 장점들을 열거하며 세뇌한다(사실이다. 다만 단점도 있을뿐).
2. 조직구조를 갖추고 있는 ‘사회생활’을 해보고 싶었고 그에 가장 적합한 기업체에 들어온 것이기 때문에 뭘 알려줄지 조금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면접 때부터 가르쳐 준다던 그 사회생활이 뭔지는 단서를 찾을 수 없다.
3. 시스템의 문제가 보이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잡무로 인해 야근을 해야만 하는 형태. 돈도 얼마 못 버는데 야근이 왠말이냐. 도울 수 있는 부분은 돕고 나눠 할 수 있는 부분은 나눠했다. 퇴근을 빨리하겠다는 일념으로.
4. 이후로 약간 무섭고 몹시 성격이 급한 사람이 되었다. 내가 해야하는 일은 모두 차분히 잘 해내고 있기 때문에 괜찮다. 오히려 편할지도.
5. 뒷담의 뒷담의 뒷담의 연속.
6. 대인관계 면에서 참 배우고 싶다고 생각하는 친구가 그랬다. “앞에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면 하지 말아라.” 그대로 했다.
그런데 나는 보통 면전에서 장단점을 잘 말한다. 장점을 훨씬 더 많이 이야기 하지만.. 이 이야기의 엔딩은 아직 몰라
7. 원치 않은 파워게임에 어쩌다가 편승하게 되었다. 사회생활의 많은 부분이 싫지만 그 중에 제일은 정치다. 발도 담그지 않으려고 노력했으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이미 편가르기에 끼워졌다. 상사의 권력 자랑에 이용되었다. 기분이 좋지 않다. 빠져나오고 싶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불편한 마음으로 일을 더 열심히 했네.
8. 20일 쯤 지나서 첫 회식을 했고 상사에게 뺨을 맞았다. 장난이래 ㅎ 경찰과 검찰, 노동청과 친해지기를 다짐했다. 직장갑질119라는 단체톡 방에 들어갔는데 반나절만에 질색하고 나왔다. 듣기만 해도 죽겠는 그런 사건들이 매일같이 수없이 일어나고 있다. 더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자위하고 싶지 않아서 빠져나왔다. 일단 볼이 아파서 병원갔다며 꼽을 주려고 했는데 혼자 월차썼다. 직원들은 토를 하더라도 직장에 와서 토를 하는데.. 연차 상신할 사람이 없다 이거지?
9. 꼽은 못 줬다. 얼굴도 안 마주치고 도망다녀서 쫒아가서 인사했다. 이런 좀생이같은 인간이랑 굳이 더 많은 대화를 할 이유가 없다. 자신의 치부를 아는 사람이라서 그랬을리 없다. 치부를 알면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하겠지. 성숙한 어른은 아니다. 앞으로는 별 생각없이 내 선에서 가능한 아부들을 하며 살겠지.
10.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내가 사회생활을 왜 싫어하는지 또 다시 깨달았다. 남성들의 가사노동과 비슷한 맥락이다. “나는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더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 나는 안 해도 되는 똥꼬빨기와 감정노동을 이미 사회생활이라는 명분으로 충분히 하고 있기 때문에 업무 외의 추가적인 감정노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나의 태도이다. 나보다 아랫사람에게도 똑같이 요구할 것이다. 따라서 나도 요구받고 싶지 않고 하고 싶지 않다.
11. 꼰대들은 무조건적인 존중을 바라고, 나는 나를 존중해주는 사람을 존중하고 싶다. 이 엉겹의 거리에 나이는 치트기가 아니다.
12. 프리랜서로 살며 가꿔온 루틴의 힘을 믿는다. 내가 가진 루틴을 지키기 위해서 포기할 것들을 정리했다. 직장 다니며 책을 쓰고, 직장 다니며 유튜브를 하는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13. 휴식을 위한 셋업을 좀 더 충실하게 하려고 한다. 연구실에 항상 두던 이완용 아로마오일과 누워서 호흡할 수 있는 스팟을 찾아야지.